[세상속으로] 보급 1위 로봇산업의 신박한 양질 전환론

미국의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단순한 문답 수준을 넘어 어떤 질문이든지 즉각 답변하는 신박한 지능형 로봇이 경이롭고 흥미롭다.

이렇게 ‘척척박사’로 진화한 비결은 방대한 양의 학습에 있다. 챗GPT에 직접 물어보니 자신은 약 45TB(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섭렵했으며, 이는 대략 200쪽 분량의 도서 9억권을 학습한 양이라고 한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챗봇의 혁신을 보면서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말한 ‘양질 전환의 법칙’이 떠오른다.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면 어느 순간 질적 비약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 ‘1만 시간의 법칙’을 도출했다. 그는 사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 조사를 통해 성공 비결은 1만시간 이상의 노력에 있다고 단언했다.

우리나라의 로봇 보급률은 전 세계 1위다. 인구 1만명당 932대로, 약 460만대의 로봇이 자동차, 기계, 유통 등 산업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양적 우위에 걸맞게 로봇산업의 질적 경쟁력도 월드클래스라고 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소프트웨어(SW), 부품 등 원천기술의 격차가 로봇 완제품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수요 기반이 미약해 규모 경제 효과도 발휘되지 않고 있다. 또한 98.5%를 차지하는 중소·영세기업은 투자 여력도 취약하다. 이처럼 ‘양질 전환의 법칙’이나 ‘1만 시간의 법칙’이 우리나라 로봇산업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양적 축적과 함께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로봇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부품 및 소프트웨어 부분에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신기술이 융합된 초격차 핵심 원천기술의 개발이 긴요하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 지능형 로봇 범용 제어기, 실내외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 가능한 자율 주행용 센서, 고난도 작업용 그리퍼(Gripper) 및 조작 지능 향상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시급하다.

둘째, 주요 산업의 생산성 혁신을 가속화하기 위한 제조 로봇을 확대 도입하고 돌봄, 웨어러블, 의료, 물류 등 생활 서비스 로봇의 보급을 활성화해야 한다.

셋째, 로봇산업 생태계 전반을 살펴야 한다. 기술 개발, 실증, 인증 및 표준, 부품과 완제품 생산, 서비스 제공, 플랫폼 운용으로 연결되는 로봇 가치사슬이 촘촘하게 연계되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침 우리 정부도 지난 12월 로봇을 국가 전략기술로 선정하고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디지털 전환 등 산업구조 대전환을 위해 초격차, 돌파형 로봇기술의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 통신(5G), 디지털 트윈기술을 융합한 로봇 서비스(Robot as a Service) 플랫폼을 역점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국내 로봇기업들이 개발한 시제품들이 폭넓고 심층적인 실증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함으로써 기술 및 시장 경쟁력을 갖춰나갈 수 있는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구축사업도 새로운 모멘텀을 갖고 추진되기를 바란다.

로봇기술은 산업 대전환 시대에 국가경쟁력 확보의 기반이 되며, 인공지능기술과 함께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 구현의 핵심이다. 물을 계속 데우면 결국 100도에서 수증기로 끓어오르듯, 1만 시간의 법칙에 나오는 성공의 순간이 우리 로봇산업에서 발현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꺾이지 않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우리의 노력과 역량을 로봇기술 개발과 서비스 육성에 집중함으로써 로봇 보급·활용 1위 국가에서 로봇산업 기술·서비스 경쟁력 1위 국가로 빠르게 진화하기를 기대해본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자료: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230214000433&ACE_SEARCH=1